날갯짓할 때 줄무늬 각도 변해
실제 이동과 반대 움직임 만들어
화려한 무늬가 ‘공격 교란’ 역할
동아일보 DB·게티이미지뱅크
나비가 날갯짓할 때 날개의 선명하고 화려한 줄무늬와 반점은 나비의 생태에 어떤 도움이 될까. 과학자들은 나비 날개의 무늬가 나비의 이동 속도와 방향을 포식자가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도록 시각적 착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화려한 날개 무늬가 단순한 장식이나 위장에 그치지 않고 비행 중 공격을 피하기 위한 방어 수단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제시됐다.
졸리언 트로시안코 영국 엑서터대 생태·보전센터 부교수 팀은 고속 촬영, 컴퓨터 모델링, 진화 시뮬레이션, 가상 나비 포획 실험을 통해 나비 날개 무늬와 움직임이 포식자의 시각을 교란하는 효과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반복되는 무늬나 대비가 강한 줄무늬는 움직이는 대상의 속도 및 진행 방향을 실제와 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움직임 착시(motion dazzle)’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가설이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얼룩말이나 뱀, 도마뱀 등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됐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뚜렷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초당 1000프레임 이상을 촬영할 수 있는 고속 카메라로 실제 나비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촬영하고 새의 시각에서 날개 무늬가 어떻게 보이는지 컴퓨터 모델로 시뮬레이션했다. 날개 무늬가 있는 경우와 컴퓨터로 무늬를 제거한 영상을 비교한 결과 날개 무늬가 있을 때 실제 비행 방향과 다른 방향의 움직임 신호가 더 강하게 나타났다. 포식자가 나비의 이동 방향을 잘못 판단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나비 날개의 착시가 이발소 앞 회전 기둥에서 나타나는 ‘이발소 기둥 착시’와 비슷한 원리라고 설명했다. 이발소 기둥은 제자리에서 회전하지만 비스듬한 줄무늬 때문에 줄이 위쪽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비 역시 날갯짓할 때 날개가 서로 맞붙었다 벌어지면서 형태가 변하고 날개 위 줄무늬의 각도·방향이 끊임없이 달라진다. 이 과정에서 실제 이동 방향과 다른 움직임 신호가 만들어져 포식자가 나비의 속도와 진행 방향을 잘못 판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트로시안코 부교수는 “나비 비행 저속 영상을 새 시각 모델로 분석했을 때 나비가 위로 날고 있는데도 아래쪽으로 움직이는 신호가 강하게 나타났다”며 “처음에는 프로그램 오류를 의심했지만 이내 나비가 포식자를 혼란시키는 시각적 효과일 것으로 예상했다”고 밝혔다.
사람을 포식자처럼 설정한 가상 나비 포획 실험에서도 같은 경향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여러 종류의 나비가 날아가는 영상을 보여준 뒤 화면을 눌러 나비를 잡도록 했다. 3000회 실험 결과 움직임을 더 크게 혼란시키는 것으로 예측된 날개 무늬를 가진 나비일수록 참가자의 공격 지점이 실제 나비 위치에서 더 크게 빗나갔다.
연구팀은 무작위 형태에서 출발한 5만 개 이상의 날개 무늬를 컴퓨터로 진화시키는 실험도 진행했다. 움직임 혼란 효과가 큰 무늬를 선택해 반복적으로 진화시킨 결과 실제 자연에서 나타나는 나비 날개 무늬와 비슷한 형태로 수렴했다. 연구팀은 “나비의 날개 무늬가 비행 중 포식자가 공격을 잘못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일부 진화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서 나비 날개의 모든 조건을 분석한 것은 아니다. 연구팀은 “향후 날개 아랫면의 무늬를 포함해 다양한 비행 방식과 관찰 각도·거리·배경에서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지 행콕 엑서터대 박사후연구원은 “유럽 나비들은 독성이 있거나 맛이 없어 포식자가 꺼리는 종이 매우 드문데도 포식자의 눈에 쉽게 띄는 화려한 날개 무늬가 왜 진화했는지 의문이었다”며 “이번 연구는 이러한 무늬 자체가 포식자의 시각을 교란하는 방어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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