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노벨상]
“부엌 청소중 잇단 전화… 그냥 끊어
남편 권유로 다시 건뒤 수상 알게돼
시는 짧아서 좋아, 호메로스는 예외
축하 계획? 밖에 나가 숲 걸을것”
8일(현지 시간)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캐나다 출신 시인 앤 카슨이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 있는 자택 주방에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출처 노벨위원회 X
“아마 지금은 시가 산문보다 유용할지도 몰라요. 시는 더 빠르고, 우린 모두 서두르고 있으니까요. 결국 시는 짧아서 좋은 거죠. 단,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예외입니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캐나다 출신 시인 앤 카슨(76)은 8일(현지 시간) 수상자 발표 직후 아이슬란드 공영방송 RUV와의 인터뷰에서 시의 매력을 이같이 설명했다. 2022년 아이슬란드 시민권을 취득한 뒤 시각예술가인 남편과 아이슬란드에서 사는 그는 이날 예상치 못한 수상 인터뷰에 유머로 답했다.
카슨은 수상 소감을 묻자 “미쳤다. 그들 모두 미친 것 같다”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노벨상 수상으로 독자층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물음에는 “출판사는 그러길 바랄 것”이라면서 “책 표지에 (노벨상 수상) 스티커가 붙을 것이다. 스티커는 (책 판매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서점가에서도 수상 발표 직후 그의 책 판매량이 급증했다. 9일 예스24에 따르면 8일 오후 8시∼9일 오전 8시 카슨의 도서 판매량은 하루 전 같은 시간대에 비해 약 184배로 늘었다.
카슨은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가 별도로 공개한 전화 인터뷰에서도 특유의 자유분방한 면모를 드러냈다. 수상 소식을 접할 당시 그는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의 자택에서 크래커를 먹고 차를 마시며 영국 문예비평지 ‘런던 리뷰 오브 북스’를 읽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부엌 바닥을 쓸던 중 전화가 잇따라 걸려 왔지만, 평소처럼 전화를 끊어 버렸다는 것. 결국 남편이 권유해 다시 전화를 걸어본 뒤에야 수상 소식을 알게 됐다.
이번 노벨상 수상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봤느냐는 물음에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 상금을 어떻게 나눠줄지 생각하고 있다”며 “집이 필요한 친구가 한 명 있고, 평소 국경없는의사회에 기부를 많이 한다”고 답했다.
카슨은 자신의 글쓰기를 “언제나 다른 일을 하려던 와중에 ‘뜻하지 않게(inadvertent)’ 벌어지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추천할 책을 묻자 “대부분은 접근하기 쉬운 ‘빨강의 자서전’(1998년)부터 읽지만, 어디서 시작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새 작품을 집필할 때 어떻게 시작하느냐는 물음엔 “중간부터 시작한다. 그게 내가 가진 유일한 규칙”이라고 답했다.
영감을 얻기 위해 찾아 읽는 작가로는 호메로스를 꼽았다. 고전의 이야기를 현대적 맥락으로 옮기는 작업의 의미에 대해서는 “고전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는 관심이 없다”며 “오히려 우리가 고전 속 인물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수상을 어떻게 축하할 계획이냐는 물음에도 그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도록 밖에 나가 숲을 걸을 거예요. 그러고는 고요함에 귀를 기울이려고요.”
1950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카슨은 시인이자 고전학자, 번역가다. 토론토대에서 고전학 박사학위를 받고 북미 여러 대학에서 고대 그리스 문학을 가르쳤다. 대표작으로는 그리스신화 속 괴물 게리온을 퀴어 성장 서사로 재해석한 ‘빨강의 자서전’, 존 키츠(1795∼1821) 같은 낭만주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권태로움이 파경을 불러오는 과정을 그린 ‘남편의 아름다움’(2001년) 등이 있다.
2024년 파킨슨병 투병 사실을 고백하기도 한 카슨은 병마에도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해 왔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고전적 전통과 유희적인 대화를 나누며 현대문학을 위한 새로운 형식을 창조한 대담하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인 작가”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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